My Story...
내가 태어난 나라 한국이란 사회에서
나는 선천적으로
꽤나 서양식 사고방식을 타고났다.
일단 남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영어를 '이해'했으며
기하학과 물리에 강하고
내 주변과의 접점에서 느껴지는 사회적 스트레스에 매우 약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상당히 보수적인 축에 들어가는 우리 집에서는
내가 기형아에 가까울 정도로 반집단적인 사고를 보이고
모든 기대에 부단히 부응해가는 모범생 형에 비해서 항상 이슈화된 문제아였다.
외압에 민감한 사람은 항상 눈치를 보기 마련.
우리 집안에서 가문 히어로로 평가받는 두 인물이 있는데
바로 막내 삼촌과 고종사촌 형.
성실함과 겸손함을 기반으로 부지런히 학문을 쌓고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노력으로 가문의 지휘를 높였다고 평가받는
'흐름안의 최고 적응자'....
(현재 막내삼촌은 치과의사이고, 작은형은 한의사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가기까지
가족들이 그들에게 표하는 존경, 경외등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면서
나는 스스로의 롤 모델을 그 인물에 맞추고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주변 친척들 역시 내가 그 뒤를 이을 '훌륭한 인물'이 되길 바랬고
나는 주변을 실망시키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삼촌과 형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가장 큰 두가지 차이점은,
첫째로 나에게는 친척들은 아무도 가지지 않았던 '꿈'이 있었고,
둘재로 내가 '수더분한 삶'을 이루기엔 저항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여러 환경적인 요인 속에서
막내삼촌과 작은형이 '꿈'자체를 꿀 수 없었던 상황의 피해자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내가 그들과 닮아가기 위해 포기해야했던 기회비용은
그들에게는 애초에 헤아릴 수 없는 변수였으며,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내가 꿈을 이루길 바라는 단 두 사람이었지만,
역시 가문의 기대와 배치되는 수준의 꿈은 포기하길 권유할 뿐이었다.
우울과 인내, 뒤틀린 영혼의 분노로 채워진 학창시절도 끝은 있었다.
결국 내가 내게 주어진 모든 무게를 던져버리고
홀가분히 나의 하늘을 날아본 날은
가족으로부터 '물리적''심리적'으로 멀어진
지난 몇년 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억눌린 에너지는 강했으며
그 에너지의 분출은 내 스스로가 보기에도
화려했으며 아름다웠다.
결국 '죽음'을 대체할 '분출'이 한차례 이루어지고
나는 예전보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선택을 마주하고 있다.
그 강철문은 10년동안이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있어
마치 늘 무표정한 생물체마냥 소름끼치고 압도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있었을지도 모를 문이다.
내 성격과 습관,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착한아이 컴플렉스...
그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된 '기대'라는 무서운 단어.
내게는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과의 동의어.
그 문을 열면 나는 아버지가 되고,
문을 여는 대신 날아오르면 나는 결국 내가 된다.
그 문을 열면 내가 잘 아는 익숙한 길이 펼쳐지고,
날아오르면 아무도 이끌어주지 않을 불안정한 허공이 있다.
압도할 수 없는 절대자를 눈앞에 마주한 느낌으로 손잡이를 잡았지만
나는 짐짓 익숙해진 내 날개를 천천히 움직여본다.
그 땐, 선택이 쉬웠지만 행동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 자체가 어렵다.
분노의 대상이었던 부모님은 연민이라는 더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고,
10년이란 세월은 나의 어디를 무디게 했는지
문을 여는 것도 아예 답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지켜야할 존재는 어찌 되었든 '타협'을 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철문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
날개를 펴고있다.
꿈과 기대...
미련과 자책...
어찌 되었든 피할 수 없는 후회...
이미 한참 늦었지만,
나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뭐가 더 맞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