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또 도킨스 아저씨 이야기가 나왔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되게 호흡조절을 잘 해가면서
장중하게 뱉아내는 문장...
[사실 종교는 why를 밝히는 것이고 과학은 how를 밝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자기는 모든 것을 납득했다더라.
--------------------- 이 밑으로는 그냥 속으로만 한 생각 ---------------------
(단지 그 친구가 그렇게까지 만들어놓은 분위기를 깨고싶지 않았을 뿐...)
여기서 잠깐.
난 이의가 있어~
그 텍스트의 의미도 뭔지 대충 알겠고,
나 또한 같은 생각으로 살아온 시간이 몇년은 되지만,
저 문장은 종교랑 과학 사이에서
잠깐의 '휴전' 내지는 당장의 '회피'의 의미일 뿐,
실질적인 중재를 제시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구...
과학과 논리, 즉 인과를 밝히는 학문이란 말이지...
곧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바로 그 전의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사유하는게야.
즉 물질의 운동양식에 why는 개입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지.
개입된다고 치더라도, 인과에 있어어 '의지'를 반영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그 시점에서 이미 과학이 아니야...
사람이 다친 이유를 설명해보라는데
넘어져서... how
균형을 잃어서... how
왼쪽 발이 돌부리를 우회하지 못해서... how
...how
...how
이 끝도 없는 질문의 한 자리에 '공리'대신
'죄를 지어서' 혹은
'마음을 잘못 먹어서'를 붙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때론 과학자들 스스로조차 놀라운 비율의 현상을 how로 잘 설명해가고 있어.
예전에는 why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내용들을
서서히 how가 잠식해 가고 있는거야.
극단적으로,
이제껏 인간은 how를 찾을 수 없는 한계의 부분에
판타스틱한 why를 붙여왔다는 경험적 통계를 얻게 된거지...
아무것도 없는건 너무 두려우니깐...
슬슬 사람들은 이제 그 표본을
모집단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되었어.
어느정도 무게 있는 귀납이 되어버린게지.
적어도 과학의 how는 why를 우회하지 않아.
오히려 '언젠가는 완전히 소거해야할 대상'이라면 더 적합할까...
도킨스는 그게 바로 지금이다라고 생각하는거라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의 의지'를 개입시켜 결론내리는거
이제는 그거 좀 그만하자 이 말이여 그 아저씨는...
단순히 how를 열심히 더 밝히자는게 아니라, 인제는 why를 몽창 다 빼자 이거지...
또, 너가 말하는 종교의 why라는것도 말이지...
결국 그게 발현되는 과정은 how를 따르고 있어.
세상엔 초자연적인 현상과 기적이라는건 없지.
단지 상대적으로 드문 확률의 어떤 현상이 인간의 지식으로 설명이 안 되는 거라든가,
정말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이 보고싶고 경험하고싶은 환상을 경험한거라든가...
어떻게든 세상에는 없을 일이 있게 될 수는 없다고.
백번 양보해 신의 의지로 일으켜진 기적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적이라는게 why보다는 how로 규정되는게 아니냐.
그 why를 이해하자면 어쩔 수 없이 현상, 즉 how를 통해 유추를 할 수 밖에 없을텐데,
즉 신의 의지를 유추하자면 결국 그의 의지로 어떤 현상이 세상에 실재하는가를 선험해야한다고.
종교의 why는 과연 how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느냐는거지. 노. 네버.
종교는 why를
과학은 how를 밝히는 것이라는 말...
거대한 문맥으로는 맞는 말이긴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그렇게까지 다른 목표를 가진 별개의 해석이 아니라고.
how와 how로 이어진 사슬의 끝에(혹은 중간중간에) why가 존재한다는게 종교,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냥 비워놓는게 맞지, 거기다 why를 넣는 일은 하지 말자는게 과학이야.
둘은 확연히, 확연히 서로 상충되.
절대 서로 다르기만 한 도구가 아니야.